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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쓸 만한 인간

체다오니 2020. 3. 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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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쓸 만한 인간』 개정증보판 출간!배우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이 3년여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영화 [파수꾼]의 홍보용 블로그에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면서 ‘글 좀 쓰는 배우’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2013년부터 매거진 [topclass]에 칼럼을 실으며 독자층을 넓혀 갔다.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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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연예인이 오래도록 없었다.

더군다나 "너의 이상형은 어떤 연예인이야?"라는 물음에는 더더욱 떠올릴 수 있는 연예인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반년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막 한국에 돌아왔을 무렵, 영화 "동주"를 보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고 말았다. 

바로 배우 박정민이다.

누가 나오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보러 갔던 동주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윤동주 시인보다 빛나는 인물이 유독 눈에 띄었다. 송몽규 선생님. 그리고 그를 연기한 박정민 배우.

흑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로 눈을 확 사로잡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대중적이지 않았던 이 배우가 단번에 좋아져버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글도 잘 쓴단다.

내가 어려서부터 글 쓰기를 참 좋아했던지라, 항상 글을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시기질투와 동경심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박정민 배우를 좋아하지만 왠지 그의 글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 '연기도 저렇게 잘 하는데 글까지 잘 쓴다고?' 왠지 모르지만 그에게 지는 것만 같아서 그가 쓴 글의 존재를 알면서도 애써 피하며 배우로서의 그의 모습만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덕밍아웃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요즘 덕질하는 연예인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박정민이라고. 이번에는 왠지 친구에게 진 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좋아하던 배우인데, 친구는 이미 그가 나온 영화며 드라마며 그가 집필한 책까지는 다 섭렵하고 성덕아닌 성덕의 위치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 너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보자, 어떻게 또다시 내 마음을 빼앗아 가는지 보자, 하는 심정으로.


책의 내용은 한 마디로 "웃펐다". 문장들이 재치있고 유쾌했고, 하지만 그 뒷맛은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이 책이 정말 말 그대로 박정민이라는 한 사람의 생각들을 조각내서 담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이 배우의 저런 모습의 이면에는 이런 성향들이 숨겨져 있었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잘 아는 누군가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이 대목,

그때 의사가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이러한 강박증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또 다른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게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길 바란다. 혼자 갖고 있으면 곪는다. 뱉는 순간이 어렵지 뱉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그 사람도 이러한 점들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나중에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꾸만 이런 대목들을 메모하게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 뿐만 아니라 모든 글에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향기가 났다.

그게 바로 약간의 찌질함이 가미된 유머.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렇듯 곳곳에 숨어 있는 박정민의 드립(?)에 있다.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피식 웃게 만드는, 친구였으면 바로 "핵노잼"을 날릴 것만 같은 개그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의지하고 혼나고 싸우고 하면서 조금은 성장해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아프면서 성장하는 유형의 인간이라서 그런지 사실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놈한테 뭔가 또 한 가지를 앗아가버리면서 그렇게까지 성장을 시키고 싶냐. 이놈의 세상아.'

하며 소주 먹고 소리치며 울다가 성남시청 앞 공원의 그늘에서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그늘이 반만 걸쳐 반만 타버린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그래도 '앞으로는 공원에서 잠들지 말아야지.' 혹은 '앞으로 공원에선 술 마시지 말아야지. 마셔도 선크림 바르고 마셔야지.' 하는 교훈을 얻고 또 성장해버렸다. 성장쟁이다. 이놈의 성장판은 언제 닫히려는지.

언뜻 보면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나름대로의 그의 소신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글들이라 글이 술술 읽혔던 것 같다.

그리고 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쉽게" "잘" 쓰는 사람의 글이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그저 떠오르는 그 생각을 종이 혹은 화면에 옮기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무엇이 잘 쓴 글인지도 모르겠고, 그걸 안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 쓰고 싶은 사람이지. 

그리고 그런 나로 하여금 읽으면서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문장들을 이 책을 통해서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도 정말 많다.

하지만 오늘 또 이렇게 이 책을 읽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누구에게나 쉽게 술술 읽히고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재밌는 글을 쓰고싶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책 속에서는 늘상 찌질했던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더욱 멋지게 보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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