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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돌이킬 수 있는

체다오니 2020. 12. 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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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SF와 판타지, 미스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신인 작가 문목하의 놀라운 데뷔작촉망받는 신입 수사관 윤서리, 하지만 부패경찰을 도와 일하게 된 그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범죄조직을 건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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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이 책은 올해 가을에 나에게 독서의 재미를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쉬는 시간이면 항상 도서관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전 쉬는 시간에 봐두었던 책을 찾아와 읽는 것이 일과였다. 주말이면 마치 미녀와 야수 속 벨처럼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또 산더미처럼 빌려,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 집에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주말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내가 책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는데, 학업의 무게에 짓눌리다보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같은 걸 읽는 날이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져, 거기에 쏟은 시간만큼 문제집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그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오히려 그게 일상이 된 채로 사회인이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직장인 3년차가 돼서야 다시금 어렸을 때 내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을 좋아했었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도통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현실과 동떨어진 SF의 세계관과 약간의 수사물과도 같은 요소들이 뒤섞여,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포기시키는 듯한 불친절한 전개가 이어졌다. 하지만 독자에게 말해주지 않는 그 빈틈들로 인해서 궁금증이 유발되고,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머릿속 물음표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의 매력으로 끝없이 등장하는 반전의 반전을 꼽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물론 그 반전들도 인상깊었지만, 오히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인상깊었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에 대한 생각에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똑같은 고통을 겪었고 똑같은 특징을 지녔음에도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그들이 일구고, 그런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 아마도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처절한 삶을 살았지만, 단지 그들이 원했던 것은 지옥을 겪기 전 소소한 일상, 그 하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함께하는 집단에 몰입이 되고, 그에 대적하는 집단에 나도 모르게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독자의 모습이 어쩌면 그들의 현실을 반영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두 똑같은 사람들인데 나를 공격하니까 저 집단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편견. 사실은 그 공격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그 진실을 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인지.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인지, 그저 이 삶조차도 빼앗길까 그 두려움에 마주하지 않으려고 눈을 피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의 마음을 보며 헛웃음이 났다. 요망한 소설이다. 그리고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즐겨읽던 SF 소설 속 디스토피아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 어느 디스토피아보다 가슴 아팠던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사연에 책을 완독한 이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졌던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잿빛이었다. 

끝없는 투쟁 속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늘 피투성이로 언제 또 습격을 당할지 항상 불안해하며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이 책을 읽던 나에게 또다른 의미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찌 할 방도는 없지만, 그저 소설 속 잿빛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지금 내 눈앞의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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